티스토리 뷰

한미약품이 로슈그룹 자회사 제넨텍에 비만 신약 후보물질 'HM17321'을 최대 23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3조 2천억 원에 기술 이전한다는 소식이 나왔습니다. 국내 제약·바이오 역사상 최대 규모입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바이오 주식이라면 기피하던 제가, 이 뉴스를 보고 처음으로 진지하게 앉아서 내용을 파고들게 됐으니까요.

 

파괴적 혁신 — 기존 비만약이 못 한 것을 뒤집다

제가 처음 이 기사를 읽었을 때, 솔직히 처음엔 또 비만약 홍보겠거니 싶었습니다. 위고비가 나오고, 마운자로가 나오고, 그때마다 주가 띄우는 찌라시들이 넘쳤으니까요. 많은 바이오 관련 이슈들이 그랬습니다. 그런데 내용을 읽으면서 느낌이 달랐습니다. 이건 기존 비만약의 효과가 좋아진 게 아니라, 방식 자체를 바꾼 것이었습니다.

기존의 주류 비만치료제들은 GLP-1(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 계열 약물입니다. 여기서 GLP-1이란 식사 후 장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뇌에 포만감 신호를 보내고 식욕을 억제하는 역할을 합니다. 위고비의 성분인 세마글루타이드, 마운자로의 성분인 터제파타이드가 대표적입니다. 효과는 분명히 있지만, 영양 공급 자체를 줄이는 방식이다 보니 지방만 빠지는 게 아닙니다.

위고비의 STEP 1 임상 하위 분석 결과를 보면, 세마글루타이드 투여 후 지방량은 19.3% 줄었지만 제지방량도 9.7% 감소했습니다. 제지방이란 지방을 제외한 근육, 체수분, 뼈를 합친 개념입니다. 쉽게 말해 살을 빼면 근육도 같이 녹는다는 뜻입니다. 마운자로의 SURMOUNT-1 임상에서도 줄어든 체중의 약 25%가 제지방 감소에서 비롯됐습니다(출처: 매일경제).

HM17321은 여기서 출발점이 다릅니다. 우로코르틴2(UCN2)라는 우리 몸에 원래 존재하는 단백질과 유사하게 설계된 펩타이드 약물입니다. UCN2란 스트레스 반응과 대사 조절에 관여하는 신호 단백질로, 이를 모방한 HM17321은 CRF2 수용체를 선택적으로 활성화합니다. 여기서 CRF2 수용체란 지방 조직과 근육 조직의 대사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단백질 수용체입니다. 식욕 억제에 집중하는 기존 약과 달리, 지방과 근육의 대사 자체에 작용하기 때문에 체중을 줄이면서 골격근량을 오히려 늘리는 결과를 비임상 단계에서 확인했습니다.

 

HM17321이 주목받는 이유, 정리하면

  • 기존 GLP-1 계열 비만약의 근육 손실 문제를 정면으로 파고든 퍼스트인클래스(First-in-Class) 신약 후보물질 — 계열 내 최초로 이 경로를 개척한 약이라는 의미입니다
  • UCN2·CRF2 경로를 활용한 임상 단계 비만치료제는 현재 전 세계에서 HM17321이 유일합니다
  • GLP-1 계열 치료제와 병용하거나 고정용량복합제(FDC)로 개발할 가능성이 있어, 기존 시장과 연계한 확장성도 큽니다
  • 임상 1상을 한미약품이 마무리하면, 이후 개발·제조·상업화는 제넨텍이 주도합니다(한국 제외 전 세계 독점권)

제가 기술 혁신에서 특히 눈여겨보는 건 '기존의 전제를 깨는 기술'입니다. 초전도체 열풍이 불었을 때도, 핵심은 저항과 손실이라는 불가능한 벽을 뚫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번 HM17321도 마찬가지입니다. '살 빼면 근육도 빠진다'는 오랜 전제를 뒤집으려는 시도입니다. 이런 기술은 시장점유율이 자연스럽게 따라오고, 고객에 대한 가격 전가 능력도 커지게 됩니다.

 

요약: HM17321은 식욕 억제가 아닌 UCN2·CRF2 경로를 통한 대사 직접 작용으로, 지방은 줄이고 근육은 지키는 세계 최초 임상 단계 비만 신약 후보물질입니다.

 

투자 시각 — 바이오를 멀리하던 제가 다시 본 이유

저도 처음엔 바이오 주식으로 된통 당한 경험이 있습니다. 주린이 시절 어느 바이오 종목 하나를 '임상 기대감'만 믿고 샀다가 -50%에 손절했습니다. 손실도 손실이지만, 투자를 할 때 남의 불행과 연관되는 투자는 지양한다는 원칙을 세웠는데, 바이오 주식은 이 원칙과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아 잘 투자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건강, 생명과 관련된 기술로 유언비어를 퍼트리고, 사람들의 희망을 이용해 수익을 올리는 바이오 주식에 영 손이 가지 않았죠. 생명을 지키고 행복을 주는 기술이 개발되는 것은 너무 기쁘지만, 바이오 관련 소문은 거품이거나 사기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건강과 생명을 두고 주가를 올리고 내리는 구조 자체가 제 투자 철학과 맞지 않았습니다. 그 후로 본 주식은 미국의 의료보험 대장주인 UNH(유나이티드헬스케어) 정도인 것 같습니다. 주가가 많이 내려왔을 때 배당주로 검토해봤습니다. 결국 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의료산업 자체를 외면할 수는 없다는 생각은 있었습니다. 인류에게 없어서는 안 될 산업이라는 점에서요.

이번 한미약품 소식은 그 생각을 다시 꺼내게 만들었습니다. 이 기술은 좀 다르게 볼 포인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날씬해지고 싶다는 심리를 자극하는 약이 아니라, 근육 손실이라는 실질적인 의학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약이기 때문입니다. 오상우 동국대 일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비만대사영양센터장)는 "이미 근육량이 적은 사람이나 고령층에게서는 근육 감소가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실제 임상 필요성을 언급했습니다(출처: 매일경제). 김민선 대한비만학회 이사장도 '근감소성 비만' 환자나 고령층 여성 같은 특정 환자군에게 맞춤형 치료법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근감소성 비만이란 체중은 과도하게 높으면서 동시에 근육량이 부족한 상태를 말합니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사회에서 이 환자군은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시장이 열리면 단순 체중 감량 시장보다 훨씬 넓은 의료 영역으로 확장됩니다. 비만만이 아니라, 근육 감소가 문제가 되는 노인 의학, 재활 의학 영역까지 닿을 수 있습니다.

물론 투자는 완전히 별개의 이야기입니다. 제가 직접 겪어봤으니 더 잘 압니다. 큰 흐름과 기술 자체의 가치를 이해하는 것과, 그 종목에 지금 당장 뛰어드는 것은 다릅니다. 남의 말만 따라가는 묻지마 투자는 결국 제 경우처럼 손절로 끝납니다. 하지만 이런 파괴적 혁신 기술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언젠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생깁니다.

 

요약: 바이오 투자에 거리를 뒀던 제가 이번 HM17321에 주목한 건, 단순 체중 감량을 넘어 근감소성 비만과 고령화 시대 전반을 아우를 수 있는 파괴적 혁신 기술이기 때문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HM17321이 위고비나 마운자로랑 다른 점이 뭔가요?

A. 핵심 차이는 작용 방식입니다. 위고비·마운자로는 GLP-1 계열로 식욕을 억제해 음식 섭취를 줄이는 방식인데, 이 과정에서 지방뿐 아니라 근육도 함께 감소하는 한계가 있습니다. HM17321은 UCN2·CRF2 경로를 통해 지방 대사에 직접 작용하기 때문에, 체중을 줄이면서 골격근량은 유지하거나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비임상 단계에서 이 효과를 확인했고, 지금 임상 1상이 진행 중입니다.

 

Q. 기술이전 금액 3조 원이 실제로 다 들어오는 건가요?

A. 아닙니다. 계약 구조를 보면 선급금은 1억 9천만 달러(약 2,629억 원)이고, 나머지는 임상 개발·각국 허가·상업화 등 각 단계마다 조건을 충족해야 받을 수 있는 마일스톤(단계별 지급금) 형식입니다. 최대 23억 달러는 모든 조건이 달성됐을 때의 이론적 상한선입니다. 제품이 출시된 뒤에는 별도의 판매 로열티도 받게 됩니다.

 

Q. 퍼스트인클래스 신약이라는 게 왜 중요한가요?

A. 퍼스트인클래스(First-in-Class)란 특정 작용 경로를 이용한 최초의 약물이라는 뜻입니다. 경쟁자가 없는 상태에서 시장을 먼저 개척하는 것이라, 특허 보호와 시장 선점 효과가 동시에 생깁니다. UCN2·CRF2 경로를 이용한 임상 단계 비만치료제가 전 세계에서 HM17321뿐이라는 점이 제넨텍이 임상 1상 단계에서 이례적으로 큰 금액을 베팅한 핵심 이유로 볼 수 있습니다.

 

Q. 한미약품 주식, 지금 사도 될까요?

A. 이건 제가 답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솔직히 저도 바이오 주식에서 -50% 손절한 경험이 있어서, 기술이 좋다는 것과 지금 주식을 사야 한다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라는 걸 몸으로 압니다. 기술의 흐름을 이해하고 공부하는 것과, 투자 타이밍과 리스크를 판단하는 것은 별개입니다. 투자 결정은 반드시 본인의 기준과 판단으로 하시길 권합니다. 상한가에 도달한 다음 날 바로 하락하기도 했죠.

 

결론

이번 한미약품·제넨텍 계약을 보면서 제가 다시 느낀 건, 진짜 큰 기술은 기존의 문제를 '더 잘 해결'하는 게 아니라 '문제의 전제를 바꿔버린다'는 점입니다. 살을 빼면 근육이 빠진다는 당연한 전제를 뒤흔드는 것, 그게 이 신약이 임상 1상 단계에서 3조 원짜리 계약을 끌어낸 이유입니다.

바이오 주식을 다시 보겠다는 말은 아닙니다. 제 경험상 찌라시와 기대감으로 움직이는 바이오 시장의 속성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다만 HM17321처럼 방식 자체를 바꾸는 기술이 어느 산업에서 나오고 있는지, 그 흐름을 놓치지 않고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관심이 생기셨다면, 이번 계약의 구조와 임상 1상 이후 일정을 한 번쯤 직접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매일경제 — 한미약품 3.2조원 기술이전 기사, 매일경제 — 한미약품 꿈의 비만약 상세 기사

 


▼ 현대차 투자 고민된다면 ▼

https://bbangggood.com/entry/%ED%98%84%EB%8C%80%EC%B0%A8-%ED%88%AC%EC%9E%90-%EA%B3%A0%EB%AF%BC-BYD-%EC%B6%94%EC%9B%94-%EC%A0%84%EA%B8%B0%EC%B0%A8-%EA%B2%BD%EC%9F%81-%EB%A1%9C%EB%B3%B4%ED%8B%B1%EC%8A%A4

 

현대차 투자 고민 (BYD 추월, 전기차 경쟁, 로보틱스)

현대자동차 주식을 보유한 투자자로서, 솔직히 2025년 고점 이후 주가가 내려오는 걸 지켜보는 건 꽤 불편한 경험이었습니다. 트럼프 관세 리스크에 BYD의 글로벌 약진까지 겹치면서 "이 회사, 앞

bbangggood.com